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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손곶감마을에 곶감 내걸다

에루화 2008. 4. 9. 16:57

영동 손곶감마을에 곶감 내걸다

 


영동에서 알아주는 곶감마을 물한리 핏들마을의 박희정 씨가 곶감 타래에 곶감을 내걸고 있다.

 

감나무에 불붙었다. 가지가 부러질 듯 주황색 감을 무겁게 늘어뜨린 감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꼭 나무에 불붙은 것만 같다. 때늦은 가을 영동 땅에 들어서면 이 불붙은 감나무가 지천이다. 특히 영동에서도 감나무 많기로 소문난 상촌면 돌고개에서 대해리, 물한리, 상도대리, 고자리, 그리고 도마령을 넘어 용화면 조동리까지 이어진 길은 내내 불붙은 감나무를 따라가는 길이다. 그 불길 속을 천천히 헤치며 돌고개에 당도했다. 그러나 돌고개에 이르러 나는 요란한 손님 접대를 치러야만 했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개 한 마리가 나를 보며 크엉컹컹 짖어댄 것이 이내 온 동네 개들을 깨워 산중이 떠나갈 듯한 개소리로 돌변한 것이다. 갑자기 나는 도둑이라도 된 듯 제 발이 저렸다.

 

돌고개에서 만난 김길상 노인 내외. 이른 아침 메밀을 베러 나서는 참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밥 먹던 마을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죄 문을 열고 누가 왔나, 살피더니 나를 이상한 눈으로 훑어보는 것이다. 조용하게 마을을 돌아보고 우아하게 떠나고 싶었던 계획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다행히 도둑치고는 내가 너무 어리숙하게 생겼던지 마을 사람들은 금새 안심하는 눈치였다. 눈치 볼것없이 나는 벌써 따뜻한 아궁이가 그리워 무작정 굴뚝에 연기 나는 집을 찾아 들어섰다. 때마침 아침밥을 다 먹었는지 노부부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할아버지는 마루에 서 계시고, 할머니는 봉당에 어색하게 서서 나를 본다. “미물(메밀) 비러 갈려구유. 잘 되두 안 했어유. 아이구 저 논에두 멧돼지가 막 내리와서 움막 지놓고 두달을 망을 봤다구유. 낮에는 일하구, 저녁에 누자면서. 베를 다 씹어먹구, 깨밭두 막 둘쑤시놓구 그래 얼마 전에 한번은 홀무 놓구 잡았었드마 누가 끌러가 부렀어. 다 홀낀 거를 누가 쨉어간 모냥이여. 멧돼지 내리온다구 민에다 얘기해두 소용없어유. 민 사람이 �맹이나 된다구.” 김길상 할아버지(82)가 마루에 서서 낯선 사람에게 공연히 푸념을 늘어놓았다.

 

곶감마을에서 만난 감 따는 풍경.

 

곶감철인데도 마을에는 아직 나무에 감이 그대로다. 농사가 바빠서 손을 못대고 있다는 것이다. “서리 내리면 물러서 못 쓰는데, 원체 바쁘니까유. 여기 감은 먹감이유. 우리야 곶감 여남은 접썩 쪼맨해유. 이 나이에 낭기 높으니 올라가든 못하구 저래 있는 감두 인제 다 빠질 판이유.” 곶감도 늙어지면 하기가 힘든 일인 셈이다. 그러고보니 마을에 곶감이 내걸린 집이 몇 집 없다. 슬프게도 젊은 사람이 별로 없다는 증거다. 돌고개에서 오리 가웃 내려오면 대해리다. 돌고개보다 더 크고, 감나무도 더 많은 마을이다. 대해리는 논자락마다 때늦은 나락걷이가 한창이다. 엄청난 두메마을도 아니건만, 여기는 아직도 대부분 낫으로 스삭스삭, 벼를 벤다. 한쪽에서 벼를 베는 동안, 밭둔덕에 매어놓은 소는 느긋하게 웃자란 가을풀을 슥슥, 베어먹는다. 대해리에서도 감나무가 많기로는 흙목마을을 빼놓을 수가 없다. 흙목마을은 물한계곡을 끼고 있다. 이 물한계곡을 타고 오르면 물한리이고, 질마재 쪽으로 오르면 대해리 본 마을이다. 대해리의 가을은 누렇게 단풍 든 여러 그루의 느티나무와 주황색으로 물든 감나무들로 눈이 부시다. 늙은 느티나무가 여러 그루 서 있는 개울가를 지나면 마을이 있고, 마을을 지나면 감나무밭이다.

 

핏들마을 박희정 씨가 어느 새 곶감 타래에 감을 다 내걸었다.  

 

“올해 감이 그양그양 됐는개비대유. 저 아래두 위에두 푸지게 달�잖어유.” 마을에서 만난 김복순 씨(69)는 감물이 검게 든 손으로 곶감을 깎고 있었다. 해마다 한 동 가까이 곶감을 깎는단다. 한 동이면 100접(한 접에 100개)이나 된다. 김씨를 만나고 내려오는 길에 손에 닿을 듯 달린 홍시가 탐스러워 눈치를 보며 슬쩍 홍시 한 개를 서리해 넣는다. 차안에서 몰래 먹는 홍시 맛이 꿀맛이다. 흙목마을을 지나 만나는 물한리는 그야말로 영동에서도 알아주는 곶감마을이다. 물한리 맨 윗마을인 한천마을을 비롯해 가리점, 중말, 핏들마을이 다 같다. 한천마을에서 만난 주병열 할아버지(77)에 따르면 한천마을 열댓 가구 가운데 절반이 넘는 10여 가구가 곶감을 깎는 집이란다.

 

곶감 타래에 걸린 곶감은 보고만 있어도 그저 마음이 푸근하다.

 

감은 한 해가 풍년이면 그 다음해는 반드시 흉년이 든다. 많이 여는 해에 감을 따느라 가지를 뚝뚝 분질러놓는 통에 이듬해에는 감나무가 제 몸을 먼저 다스리는 것이다. 사는 이치가 다 이렇다. 풍년이 가면 흉년이 오고, 흉년이 지나면 풍년이 오는 것이다. 보통 감나무에는 30접 이상의 감이 달린다. 물론 큰나무는 100접의 감을 매달기도 한다. 물한리의 감은 홍시감이 아니라 ‘먹감’이라 불리는 ‘무동시’(무종시, 씨 없는 감) 아니면 ‘고동시’다. 고동시를 여기서는 ‘빼조리’라고 한다. 무동시는 다른 감보다 늦게 따는데, 서리 내릴 때까지 감을 따기도 한다.

 

물한리에서 만난 한 할머니가 언덕의 곶감 타래 앞을 지나고 있다.

 

무릇 늦가을에 비가 많이 오면 곶감 맛이 떨어진다. 곶감은 볕이 나야 분이 뽀얗게 나고, 맛도 달다. 비 맞은 곶감은 물러버린다. 대체로 곶감은 찬이슬이 내리는 한로와 서리가 내리는 상강 사이에 깎아 말려야 좋은 품질이 나온단다. 물한리를 비롯한 이곳 주변 마을의 곶감이 다른 지역과 다른 점은 기계를 쓰지 않고 아직도 상당수가 손으로 곶감을 깎는 요즘 보기 드문 손곶감을 낸다는 점이다. 곶감도 손이 많이 갈수록 맛이 좋은 법이다. 곶감마을이 다 그렇듯 물한리에도 집집마다 원두막처럼 생긴 감타래(감 건조실)를 두고 있다. 이 감타래가 클수록 곶감을 많이 하는 집이다.

 

늦가을 오후의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토종닭.

 

물한리 핏들마을에서 만난 박희정 씨는 때마침 감나무에 올라 감을 따고 있었다. 그가 긴 장대를 하늘 높이 올려 감꼭지를 당길 때마다 주황색 감이 두세 개씩 달려 내려온다. 어느 새 그가 허리에 찬 감망태에도 감이 한가득이다. 오전 내내 그는 어제와 오늘 딴 감을 깎아 오후에는 감타래에 내다건다. 그의 아내가 밑에서 감을 집어주면 그는 감을 받아 순식간에 줄에 꿰어단다. 눈 감고도 손발이 척척 맞는다. 반나절 넘게 나는 박희정 씨 집과 감타래에 머물다 오후 늦게서야 길을 나선다.

 

상도대리 길가에서 만난 감나무 풍경(위). 상도대리에서 만난 한 흙집의 사립문 너머로 곶감작업중인 할머니가 보인다(아래).

 

물한리를 비롯해 물한계곡 주변의 감나무 물결은 아래로 아래로 흘러 상도대리로 이어진다. 상도대리 수리너미에서 만난 노부부도 감타래에 곶감을 매달고 있었다. 할머니가 밑에서 감을 깎아 두 개씩 쌍을 지어 줄을 매어놓으면 할아버지는 감타래에 올라 싸릿가지로 만든 감꽂이에 차례로 곶감을 매단다. 곶감을 매다는 방법은 두 가지다. 길게 한 줄로 감꼭지를 매달기도 하고, 감꽂이에 두 개씩 쌍을 지어 감을 매달기도 한다. 거동이 불편해서 감도 딸 수 없다는 할아버지가 사다리를 타고 감타래에 올라 감을 매달고, 허리가 아프다는 할머니가 밑에서 감을 깎아 올려주는 모습은 숭고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래두 큰 빙 안들구 살어유. 흙 구딩이에 살아 그렁가.”

 

두메마을의 산중 콩밭에 도리깨 콩타작이 한창이다.

 

수리너미를 돌아 도마령(刀馬嶺)으로 향하는 길가에도 여전히 감나무들이 눈부신 붉은 잎과 주황색 감을 매달고 있다. 고개 아래 둥지를 튼 고자리를 지나면 이제 굽이굽이 각호산 자락을 넘어가는 도마령이다. 도마령은 비포장으로 남은 가장 아름다운 길 중에 하나였지만, 이제는 포장될 날만 기다리고 있다. 혹시 <집으로>라는 영화를 본 사람은 기억할 것이지만, 영화의 첫 장면이 이 도마령에서 시작된다. ‘상우’를 태운 시골버스가 구불구불 도마령을 올라오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른바 나는 이 영화의 ‘헌팅 디렉터’로 이 구불구불한 길과 산중마을인 궁촌리 지통마와 마을에 사는 주인공 할머니를 감독에게 소개한 적이 있다. 흥행에 성공했지만, 주인공 할머니는 공연한 불편을 겪어야 했고, 촬영지가 된 마을이 유명해져 씁쓸한 뒷맛도 남는다.

 

영화 <집으로>의 배경이 되었던 영동 궁촌리 새막골 풍경.

 

이 도마령을 넘어서면 용화면 조동리(새골) 불당골이다. 길은 산자락을 뱀처럼 구불구불 기어내려가 느릿느릿 하늘 아래 첫동네인 불당골에 닿는다. 불당골 또한 감나무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빈집으로 남은 흙집들은 어느 새 감타래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따로 건조실이 없어도 볕 잘 드는 흙집 툇마루면 ‘감타래’로는 그만인 것이다. 아침나절 돌고개를 떠나 저녁나절에야 불당골에 닿았다. 사실 1~2시간이면 충분한 길을 나는 구석구석 살피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벌써 감나무 사이로 감잎단풍 같은 발그레한 노을이 한장한장 내려앉았다.


<좋은 곶감 고르기와 곶감 요리>

 

본래 ‘곶감’이란 말은 ‘곶다’에서 온 것으로, ‘꼬챙이에 꽂아서 말린 감’을 뜻한다. 된소리로 ‘꽂감’이라 하는 것도 ‘꽂다’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꽂아서 말린 감은 영양도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동의보감>이나 <본초강목>에는 곶감이 기침과 설사에 좋고, 각혈이나 하혈, 숙취 해소에 좋다고 했다. 특히 곶감 표면의 흰가루(시상, 시설이라 했다)는 기관지염과 폐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또한 한방에서는 동맥경화나 고혈압에 좋고, 이뇨작용과 피로회복, 정력강화와 정액생성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좋은 곶감을 고르려면 먼저 너무 딱딱하거나 무른 것, 검은 것은 피하는 것이 좋고, 곰팡이(곶감에 피는 하얀 가루, 즉 시상과는 구분이 되는 곰팡이)가 피지 않고 깨끗한 것이 좋다. 중국산 수입 곶감은 우리 곶감에 비해 곰팡이가 많이 피어 있으며, 표면에 흰가루가 너무 많은 편이다. 또한 중국산은 우리 곶감에 비해 두께가 얇고, 꼭지 부위에 껍질이 많이 붙어 있으며, 필요 이상으로 딱딱하거나 무르다.

 

 

곶감은 말리는 방법과 지역에 따라 모양도 약간씩 다른데, 일반적으로 납작하게 눌러 말린 것은 제수용으로 쓰고, 씨가 없으면서 덜 마른 것은 곶감 쌈에 쓰며, 곶감에 꼬챙이 꿴 흔적 없이 꼭지를 달아 말린 것은 수정과에 쓴다. 곶감으로는 수정과를 비롯해 떡과 차, 죽, 쌈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수정과는 먼저 각각 생강을 달인 물과 계피를 달인 물을 합쳐(5:3) 적당량의 황설탕을 넣고 끓인 후 곶감에 칼집을 내어 잣을 박은 다음 수정과에 띄우면 된다. 곶감죽은 쌀에다 잘게 썬 곶감을 넣어 끓인 것으로 설사가 잦은 사람에게 좋다. 이 때 게 음식은 피해야 한다. 곶감 쌈은 씨를 빼낸 곶감에 호두나 잣을 골고루 박아 먹기 좋게 잘라내면,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은 쌈이 된다. 곶감은 바람이 잘 통하는 서늘한 곳에 보관하는 것이 좋고, 오랜 동안 보관할 경우에는 냉장고에 넣어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