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공원 지역인 북한산과 도봉산에서 야영을 할 수는 없지만, 다락원 캠핑장을 이용하면 도봉산 산자락에서 하룻밤 묵을 수 있다.
"우리 서울에/희게 빛나는 크나 큰 보석들이 있음을 서울 사람들도 잘 모른다. 이 흰 보석들은/눈부신 겨울로부터/봄 여름 가을까지 한해 내내 빛나고 빛난다." - 정공채, 〈서울의 보석〉 중
기상청도 알아맞히지 못하는 변덕쟁이 장마철 날씨. 계속되는 우중충한 날씨에 마음도 장마다. 궂은 날씨 때문에 멀리 나가는 게 꺼려진다. '잠시 비가 그쳤는데 폭우를 만나면 다시 돌아갈 길이 걱정돼서 멀리까지는 나가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서울에는 '서울의 보석'이라 할 수 있는 북한산과 도봉산이 있다. 북한산과 도봉산은 국립공원지역이어서 허가를 받지 않으면 야영은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다락원에 사설 캠핑장이 있으니 이곳에서 야영을 하면 된다.
↑ 방학동 능선길에서 내려가면 무수골로 이어진다.
시호를 얻지 못한 왕의 묘 앞에서 발길을 멈추다
북한산 둘레길 20구간 왕실묘역길은 우이동에서 방학동으로 이어지는 산길과 마을길이다. 왕실묘역길은 연산군묘와 정의공주묘가 있는 역사문화 탐방로로 1.6km의 짧은 구간이지만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다.
왕실묘역길의 시작점은 우이령길 입구지만, 수유역에서 버스를 타고 왔다면 우이동성원아파트 정류장을 들머리로 삼을 수 있다. 정류장에서 우이령길 입구 쪽으로 100m 정도 가면 해병대 전우회 사무실이 나온다. 그곳에서 방학로를 따라서 5분 정도 걸어가면 왕실묘역길을 알리는 아치형의 구조물과 함께 산길 입구에 닿는다. 산길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도 될 만큼 넓다. 숲이 울창해 깊은 산속처럼 보이지만 방학로를 달리는 차 소리가 들릴 정도로 도로와 가까이 있다.
연산군묘로 가는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면 산길을 거의 다 내려온 지점에 제법 큰 묘가 하나 있다. 뗏장이 거의 다 떨어져 있는 이 묘가 연산군묘는 아니다. 이정표를 따라서 산행을 계속한다. 산을 내려가는 나무 계단 옆에 가지가 거의 직각으로 꺾인 소나무가 한 그루 있다. 이 소나무는 연산군묘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가 궁금즘을 갖고 산을 내려간다.
산길에서 빠져나오면 주택가로 이어진다. 조용한 마을을 통과하면 연산군묘 재실이 먼저 나온다. 이곳을 조금 더 지나면 원당샘과 함께 방학동 은행나무가 나온다. 원당샘이 있는 원당마을은 원래부터 자연부락이었는데 600여 년 전에 파평 윤씨가 이곳에 정착했다고 전해진다. 원당샘은 심한 가뭄 때에도 마른 적 없고, 겨울철에도 얼지 않는 자연 샘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샘 주변의 숲이 보전되지 못하고 무분별한 택지 개발로 인해서 샘이 마르고 말았다. 현재는 원당샘에서 물이 나오고 있지만, 이것은 관정을 뚫어 전기펌프로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 때문에 샘의 물은 오전 5시부터 오후 11까지만 나온다. 산자락까지 들어온 콘크리트 건물들. 이곳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살던 곳이어서 택지 개발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과연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기 위해서 지켜야 할 그 선은 어디까지일까. 이제는 지지대에 가지를 받친 채 800여 년의 세월을 견디고 있는 방학동 은행나무는 모든 것을 알고 있을까. 샘이 마른 것이며 연산이 이곳으로 오게 된 것까지. 은행나무는 역사의 어느 곳까지 뿌리를 뻗고 있을까.
조선의 역대 임금들은 죽은 뒤에 신하들이 임금의 공덕을 기리는 시호를 얻었다. 또한 왕의 무덤은 그 이름도 능(陵)이라고 한다. 그러나 반정으로 몰려난 연산은 시호를 얻지 못한 조선 최초의 임금이다. 연산군묘에는 홍살문이나 정자각 같은 임금의 묘에 으레 있을 것들이 없을뿐더러 봉분의 크기마저 임금의 묘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다. 31세의 나이로 유배지 강화 교동도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연산은 7년이 지나서야 그의 부인 신씨의 요청으로 그나마 이곳에 안치될 수 있었다.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윤씨가 윤씨라는 것과 원당마을에 파평윤씨들이 자리 잡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연산군이 죽어서야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폐비윤씨는 함안 윤씨이며 연산군묘가 이곳으로 옮겨진 것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현재 연산군묘가 있는 자리의 주인은 본래 태종의 후궁 의정궁주조씨였다. 이 땅은 원래 세종의 아들 임영대군의 땅이었으며, 임영대군은 왕명으로 의정궁주의 제사를 맡았다. 그 후 임영대군의 외손녀이자 연산군의 부인인 거창군부인 신씨가 요청하여 연산군의 묘를 이곳으로 이장하게 된 것이다.
연산은 후대에 폭군으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즉위 초에는 사치풍조를 잠재우기 위해 단속 법령인 금제절목(禁制節目)을 만들기도 하였고, 암행어사를 파견하여 민간의 동정을 살피고 관료의 기강을 바로 잡았다. 또한, 변방 지역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귀화한 여진인을 회유하고, 비융사를 설치해 갑옷과 무기를 생산하는 등 국방에도 힘을 썼다. 이렇듯 연산은 성종 말기에 나타나기 시작한 퇴폐풍조와 부패상을 없애는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생모인 폐비윤씨의 폐출 경위를 알게 된 뒤부터 패륜 행위를 일삼고 무오사화, 갑자사화를 통해 폐비윤씨를 사사시킨 세력들을 처단했다. 한편, 폐비윤씨를 왕비로 추존하여 회묘를 회릉이라 고친 뒤 성종 능에 함께 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연산은 생모에 대한 그리움을 미치지 않고서야 견딜 수 없었던 것일까. 능(陵)이 아닌 연산의 묘 앞에서 그를 임금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이해해본다.
↑ 연산군묘에는 다섯 기의 묘가 있다. 제일 위 왼쪽이 연산군묘, 그 옆은 연산군의 부인 거창군부인 신씨의 묘이다. 한 단 아래에는 의정궁주의 묘, 맨 아래에는 연산군의 사위 구문경의 묘와 딸 휘순공주의 묘.
큰 배낭 메고 주민들 눈길 끄는 백패커
정의공주묘에서부터는 북한산둘레길 19구간 방학동길로 무수골까지 이어진다. 약 3km 되는 구간이며 방학동에서 도봉동으로 이어지는 산자락 길이다. 산길이기는 하지만 오르락 내리락이 심하지 않아 편하게 걸을 수 있다.
정의공주묘를 지나 산길을 약간만 걸으면 곧 포도밭이 나온다. 포도밭에서는 아파트가 보인다. 방학동길은 마을과 거의 붙어있듯이 길이 나있다. 포도밭을 지나 길을 꺾어 들어가면 마을이 보이지 않는 산속으로 접어든다. 산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넓은 터가 있는데, 이 터에는 예전에 포장마차 같은 것이 있었는지 낡은 평상이 있다. 평상은 너무 낡아서 앉을만하지는 않지만 터가 제법 넓고 땅이 평평하고 그늘진 곳이어서 잠시 땀을 식혔다 갈만해 보인다.
방학동길은 마을과 가까워서인지 길을 걷다보면 배낭을 멘 등산객들보다도 가벼운 옷차림의 주민들을 더 자주 만난다. 물통 하나 달랑 들고 '뒷동산'에 오른 주민들에게는 큰 배낭을 멘 취재팀이 이상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제주 올레길에서도 숙소를 잡아놓지 않고 가는 곳마다 적당한 숙박업소나 야영지를 찾으며 길을 걷는 올레꾼들이 종종 있다. 따지고 보면, 둘레길을 큰 배낭 메고 가는 것은 이런 올레꾼들과 차이가 거의 없다. 북한산 둘레길 백패킹은 먼 곳으로 떠나기 힘든 요즘 같은 장마철에 하기에도 좋고, 좀 더 멀고 험한 곳으로 가는 백패킹에 대비하는 연습 백패킹으로도 좋다. 또, 산행 중에 기상 악화나 사고가 생겼을 때에 산행지에서 탈출과 구조요청에도 유리하다.
바가지 약수터는 이정표에만 약수터일 뿐 넓은 터 어디에도 샘이 나오는 곳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름에서 예전에는 이곳이 샘터였을 것이고 막아 놓은 샘이 어디인가 있으리라는 추측만 할 수 있다. 바가지 약수터를 지나면 방학동길 구간 중 가장 높은 곳으로 오르는 길이 시작된다. 가파른 오르막은 아니고 천천히 걸을 만한 경사다. 방학능선 정상을 지나서 내리막길을 다 내려오면 방학동 길의 명물 쌍둥이 전망대가 나온다. 높이 10m 정도의 달팽이 계단을 올라가면 북한산과 도봉산 일대뿐만 아니라 수락산과 불암산의 산세까지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쌍둥이 전망대에서 내려와 19구간의 종점이자 18구간의 시작점인 무수골로 향한다.
무수골과 다락원을 이어주는 북한산 둘레길 18구간 도봉옛길은 약3km의 산길이다. 구간 중에는 휠체어로도 탐방이 가능한 무장애탐방로가 있고, 도봉탐방지원센터와 만나기도 한다.
↑ 방학동길 구간 중에서 가장 좋은 경치를 즐길 수 있는 쌍둥이전망대이다.
무수골은 '근심이 없다'는 뜻의 '무수(無愁)'라고 전해지는 이야기도 있으며, 수철동 혹은 무쇠골이라 불리던 대장간이 많았던 동네라고도 한다. 1·7호선 도봉산역에서 도봉탐방센터로 올라가는 길에 식당들이 북적대는 것과 다르게 무수골은 비교적 조용한 마을이다. 이곳에는 무수골집이라는 백숙과 파전을 파는 식당이 있다. 여기에서는 아이스크림도 팔고 있으니 더위에 지친 산행객들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무수골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면 무장애탐방로가 나온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의 산행을 돕기 위해서 나무 데크로 탐방로를 조성한 길이다. 그런데 탐방로 중간 부분에 문인석 하나가 서 있다. 문인석에 대한 해설판도 없고 탐방로에서는 봉분이 보이지도 않는다. 무장애탐방로에서 나와 도봉사와 능원사를 왼편에 끼고 내려오면 도봉탐방지원센터에 닿는다. 도봉탐방지원센터는 7호선 도봉산역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이 거치는 곳이다. 이곳에는 식당과 매점, 등산복 매장이 늘어서 있으며, 백패커들에게는 야영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할 수 있는 중요한 곳이다. 다락원 캠핑장에서는 매점이 도보로 1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으니, 필요한 물품은 이곳에서 준비해 가는 게 좋다.
산악박물관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빠지면 광륜사 뒤 엣 서원터인 넓은 공터가 나오고 왼편에 화장실이 있다. 공터를 지나 산길로 들어간다. 도봉옛길은 도로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차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도봉옛길 끝나는 지점에는 도봉산 봉우리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저녁녘에 아슴푸레하게 보이는 도봉산의 모습은 신선의 모습과 흡사하지 않을까. 이곳에서 잠깐 숨을 돌렸다가 산길을 마저 내려오면 다락원 캠핑장에 닿는다.
↑ 우이령길 입구 쪽에서 시작한 왕실묘역길의 초입이다. 숲은 우거졌지만 방학로와 가까이 있어 차 소리가 들린다.
information
북한산 둘레길 백패킹 길잡이
북한산 둘레길 백패킹은 서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쉽게 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산행 들머리를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이용해야 할 지하철 및 버스의 노선이 달라진다. 도봉산 북쪽에서 남쪽 방향을 내려와 다락원에 닿고자 한다면 북한산 둘레길 15~17구간 3개 구간을 연장하면 된다. 총 연장 거리는 약 10.7km이며, 소요시간은 약 5시간20분이다. 반대로 남쪽에서 북쪽 방향으로 올라갈 경우에는 18~20구간 3개 구간 정도를 연장하며, 산행은 20구간부터 시작한다. 총 연장 거리는 약 7.8km이며, 소요시간은 약 3시간 45분이다. 산행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1~2개 구간을 더 연장하여도 된다. 또는 백패킹 일정을 이틀로 하여 첫날과 둘째날에 3개 구간씩 산행을 하여도 좋다. 둘레길 백패킹은 경로에서 탈출이 쉽고 대중교통을 바로 이용할 수 있어 복귀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게 큰 매력. 요즘 같이 산행이 쉽지 않은 장마 때에 부담 없이 산행할 수 있는 코스이다. 둘레길 백패킹이 내키지 않으면 도봉산 등산로로 산행을 하고, 다락원 캠핑장에서 야영을 하면 된다.
•다락원 YMCA 캠핑장
다락원 YMCA 캠핑장은 1·7호선 도봉산역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있다. 이 캠핑장은 서울에서 접근하기가 좋으며, 렌탈 캠핑을 운영하고 있어 캠핑 장비가 없는 캠핑 초보자들도 캠핑을 체험할 수 있다. 캠핑장 안에는 계곡이 있기는 하지만 계곡 바닥이 굵은 모래여서 물이 많이 고이지 않는다.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정도의 수량은 못 되고 손발을 담글 수 있을 정도다. 또한 샤워시설은 다락원 내부 시설 보수 공사 중이어서 당분간 이용할 수 없다. 화장실은 남녀별도의 수세식이다. 오토캠핑도 가능하다.
이용 안내 및 문의 인터넷 홈페이지 cafe.naver.com/ymcadarakwon
전화 010-4433-2293
•교통
도봉산 백패킹은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18~20구간을 연장해서 다락원으로 가고자한다면 우이령길입구를 들머리로 삼는다. 우이령길입구는 4호선 수유역 3번 출구에서 120, 153번 버스를 타고 우이동성원아파트에서 내려 3분 정도 걸으면 된다. 15~17구간을 연장해서 다락원으로 가고자한다면 안골계곡을 들머리로 삼는다. 안골계곡은 1호선 의정부역 1번 출구 건너편에서 1, 2, 5, 23번 버스를 타고 안골 입구에서 내려 15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다른 곳을 들머리로 삼고 찾아가는 길을 알고자 한다면 북한산둘레길 홈페이지(http://ecotour.knps.or.kr)를 참고하면 된다. 북한산 둘레길 전체 경로 및 교통정보가 잘 나와 있으며 팸플릿 이미지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연산군묘
북한산 둘레길 20구간 왕실묘역길에서 주요 볼거리는 연산군묘이다. 연산군묘의 관람시간은 하절기(3월~10월)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동절기(11월~2월)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다. 정기휴일은 매주 월요일이며, 관람요금은 무료다. 연산군묘 주변에는 별도의 주차장이 없으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더 편리하다. 문의 02-3494-03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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