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길' 상점가 일러스트. |
이렇게 찾아가기 쉬운 산이 또 있을까? 지명은 명쾌하고 진입로는 직관적이다. 1호선 도봉산역에서 내려 도봉산길로 나오면 화사한 등산복과 스틱을 매단 배낭 사이로 대뜸 도봉산이 보인다. 건널목을 건너 탐방지원센터까지는 약 1km, 100여개의 음식점과 50개 남짓의 아웃도어 매장이 즐비한 도봉산길을 20분 정도 걷는다. 왁자지껄한 호객소리와 저렴하고 다양한 등산장비가 산 밑에서 발길을 잡고, 꾸덕꾸덕 양미리 굽는 냄새와 막걸리 불콰한 등산객들의 웃음소리는 귀가시간을 한정 없이 늦어지게 만든다. 2000원짜리 김밥 한 줄을 사면 시뻘건 겉절이가 한 움큼 따라오고, “안 사도 좋으니 매장에서 몸 녹이고 가시라”며 지나는 이들에게 커피 한 잔 권하는 넉넉함, 산으로 가는 길은 어쩌면 사람을 만나는 길이 아닐까. 시골장터처럼 부산하고 사람냄새 물씬 나는 도봉산 입구 상점가를 탐험해보자.
'도봉산4길' 새동네 골목상점가 일러스트 |
도봉산 입구에서 신선대를 오르는 길은 북한산국립공원에서 가장 많은 등산객들이 방문하고, 전국 국립공원 144개 등산로 중 두 번째로 이용압력이 높은 코스다. 북한산국립공원 주요 출입구 8개 지점 중 도봉지구를 통해 등산하는 비율이 전체 등산객 중 24%에 이르며 이들 중 89%는 정상을 거쳐 도봉지구로 원점 회귀한다. 또한 우이지구나 원도봉지구에서 산행을 시작한 이들도 도봉지구로 하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도봉산 입구는 언제나 등산객으로 북적이며 거대한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아웃도어 매장이 주를 이루는 도봉산 지원센터 하단의 '도봉산길' |
1호선 도봉산역에서 도봉탐방지원센터까지 이어지는 진입로는 도봉산4길과 도봉산길로 나뉜다. 도봉산길 입구 삼거리에서 시작하는 도봉산길 약 800m 구간은 디자인 서울 거리로 조성되어 있으며 버스정류장에서 탐방지원센터까지는 약 30개의 아웃도어 직영점 및 대리점이 밀집해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도봉산 입구에 조성되기 시작한 아웃도어 매장들은 등산인구의 급증과 아웃도어 호황기를 맞아 2000년대 중반부터 급속하게 늘어나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 대부분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한때는 식당가였던 도봉산 입구의 상가들이 브랜드 직영점 및 대리점 위주로 바뀐 것은 홍보효과를 기대하는 브랜드숍이 아니라면 유지가 힘들 정도로 비약적으로 치솟은 임대료가 중요 원인이다. 각 브랜드의 안테나숍 역할을 했던 이 매장들은 최근 백화점과 아웃렛의 할인행사에 고객을 빼앗기며 불황 속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도봉산역에서 신호등을 건너면 골목으로 이어지는 새동네 '도봉산4길' |
도봉산4길은 도봉산 아래 첫 마을이라는 새동네의 골목길이다. 도봉산과 중랑천 사이의 아늑한 주택가였던 새동네는 지하철 개통과 등산객의 급증으로 2000년대 이후 점차 상업화되기 시작했다. 좁고 후미진 골목길은 쓰레기 투기로 몸살을 앓았고 등산객들의 고성방가에 상인과 주민들 사이의 반목도 심해졌다. 이에 2012년부터 3년간 서울시 주민참여형 재생사업를 진행하여 가로공원과 주민공용시설을 만드는 등 주거환경을 정비했다. 이제 새동네는 ‘2015년 대한민국 경관대상’로 선정될만큼 깔끔하게 변모했지만, 여전히 좁은 마을길에 식당과 포장마차, 노점상들이 다닥다닥 맞붙어 시골장터처럼 친숙하고 정겨운 느낌을 준다.
최근 극심한 경기침체는 이곳 도봉산 입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산행 후 식사를 하지 않고 귀가하는 등산객들이 많아졌고 술자리도 눈에 띄게 줄었다며 상인들의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웃도어 매장 역시 불황으로 인한 폐업이나 브랜드 변경이 적지 않다. 어려운 시절을 웅변하듯 아웃도어 매장마다 세일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고, 사람들은 싸고 푸짐한 식당만을 찾는다. 이처럼 유례없이 장사가 안 되는 시절이지만 도봉산 입구에는 여전히 산처럼 느긋한 낙관주의가 흐른다. “설마 산에 가는 사람이 없어지겠습니까. 힘든 날 있으면 좋은 날도 오겠지요.” 100여개의 음식점과 50개 남짓의 아웃도어 매장, 셀 수 없이 많은 노점상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아가는 도봉산길이 지금 새로운 봄을 기다리고 있다.
도봉산 입구 아웃도어 매장의 산악인들
1. 검악산악회의 꿈꾸는 막내 ‘레키’ 김명수씨
이제 31살인 김명수씨는 도봉산입구 버스정류장 앞에 위치한 레키 매장의 판매직원이자 검악산악회의 파릇파릇한 막내회원이다. 24살 때 코오롱등산학교를 졸업하고 7년 전 검악산악회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암벽등반에 빠져들었다. 검악은 인수봉의 검악A,B와 선인봉의 검악T오버행 등을 개척한 전통 있는 산악회로 아직도 매주말이면 10여명의 회원들이 활발하게 암벽등반에 임하고 있다. 적게는 7살, 많게는 수십 년 나이차이가 나는 형님들과 등반하는 것에 대하여 김명수씨는 “부담스럽진 않아요, 그저 더 잘하고 싶을 뿐이죠”라며 싱긋 웃는다.
직업 특성 상 주말에 근무를 해야 하는 김명수씨는 올 겨울 휴일에는 주로 판대와 가래비에서 빙벽등반을 하며 보냈다. “파트너 찾기가 조금 힘들어도 번잡한 주말보다는 평일 등반이 낫다”는 김명수씨는 도봉산 밑에서 근무하지만 선인봉보다는 인수봉을 더 자주 가고 휴가는 주로 설악산에서 보낸다. 단순한 판매자가 아니라 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고객과 교감하고 싶고, 좋은 사람들과 안전하고 즐거운 등반을 오래 즐기고 싶다는 그의 꿈이 도봉산 밑자락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레키 도봉산점 02-954-3849
2. 도봉산 선인봉의 터줏대감 ‘어프로치’ 공재은씨
1977년 도봉산 선인봉 박쥐길에서 처음 등반을 시작한 공재은씨는 명실상부 선인파이자 도봉산의 터주대감이고, 그가 운영하는 중고장비매장 어프로치는 산악인들의 아지트로 늘 북적거린다. 각종 등산의류와 다양한 암·빙벽 장비, 배낭, 캠핑 장비까지 산악활동에 필요한 대부분의 제품들이 갖춰져 있다. 손때 묻은 낡은 장비와 저렴한 신상품이 섞여 등반가라면 누구나 매혹될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돈을 남기려 기를 쓰지 않고 위탁판매와 물물교환에 더 적극적인 주인장 덕분에 어프로치에는 주말이면 2~30명의 손님이 한꺼번에 몰려 정신없이 바쁘다. 또한 경송산악회 출신이자 익스트림라이더 1기인 공재은씨에겐 선후배가 무수하고, 그들에게 어프로치는 고마운 사랑방이다. 겨울이면 연탄난로 위에 고구마를 구우며 온종일 산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공재은씨는 큰돈 벌지 못해도 산 친구들과 매일 얼굴 마주하는 일상에 만족한단다. 무엇보다 매일 봐도 매일 그리운 선인봉이 등 뒤에 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중고장비 어프로치 (02)990-8848
3. 베테랑과 새내기의 상승효과 ‘영원아웃도어’ 상규석·김용호씨
“사실 블루마운틴이 아니라 부루마운틴 산악회예요.” 상규석씨가 올해로 46주년이 되는 산악회의 정식 이름을 일러준다. 69년도에 창립한 부루마운틴 산악회는 아직까지도 초대회장과 함께 등반을 할 정도로 전통과 활기가 가득하다. 84년도에 블루마운틴에 가입한 이래 30년 넘게 산에 오르고 있는 상규석씨는 도봉산산악연합회에 가입하고 도봉산 낙석제거작업을 후원하는 등 다양한 활동으로 산악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상규석씨는 20년 넘게 등산장비점에서 근무한 베테랑으로 2013년부터 도봉산 입구 영원아웃도어 매장을 책임지고 있다. 이곳에는 또 한 명의 클라이머 김용호씨도 함께 근무하는데 그는 이제 등반을 시작한지 1년 차인 새내기이다. “도봉산에서 좋은 에너지를 받고 많은 악우들을 만날 수 있으니 여기처럼 근무 조건 좋은 곳이 또 없을 겁니다.” 30년 경력의 베테랑과 이제 막 등반에 눈뜨는 새내기가 함께 일하는 유쾌한 직장, 도봉산 입구 영원아웃도어에 활기가 넘친다.
영원아웃도어 도봉산점 (02)3494-4666
4. 산 밑에서 사람을 만나는 행복 ‘파타고니아’ 박현우씨
“몇 년 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까지 많이 만났어요. 도봉산점에서 일하는 덕분이지요.” 작년 4월문을 연 파타고니아 도봉산점의 박현우 점장이 산 밑에 사는 즐거움을 먼저 토로한다. 대학산악부 출신으로 엘브르즈를 등정한 경험이 있는 그는 티베트 라사에서 네팔 카트만두 고원까지 자전거로 완주한 MTB 라이더이자 고비사막을 도보로 횡단한 모험가이기도 하다.
“파타고니아는 직장을 떠나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브랜드예요. 마케팅이 아니라 진심으로 환경문제를 고민하고 정직한 제품을 통해 자연친화적인 삶의 태도를 제시하지요.” 파타고니아 도봉산점은 1회용 물통과 종이컵의 사용을 줄이고 철저하게 분리수거를 하며 일상 속의 작은 부분까지 브랜드의 신념을 실천하고자 노력한다. 또한 박현우씨는 도봉산점의 매력으로 가족처럼 친근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꼽는다. “산에 가는 길이니 다들 얼마나 자유롭고 즐거운 마음이겠어요. 산 좋아하는 분들과 만나니 매일 매일 웃을 일이 많고 즐겁습니다.”
파타고니아 도봉산점 02-955-3933
도봉산 입구 사람 사는 이야기
“흔한 음식에 마음을 담아서” '도봉산 손짜장’ 김종근 사장
수타면 경력 15년의 김종근 사장이 2008년 문을 연 도봉산 손짜장은 쫀득쫀득한 면발과 육수의 깊은 맛이 특징이다. 무색소 재래식 춘장을 섞어 만든 짜장의 고소함과 홍합과 고기가 절묘한 짬뽕 육수가 저절로 단골을 만든다. 김 사장은 요즘은 주말 손님도 많이 줄었다며 경기침체에 한숨을 내쉬다가도 “돈 버는 것만이 목적은 아니지요” 손님들이 맛있게 드시고 다시 오시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다며 힘차게 수타면을 뽑아낸다. (02)3494-2007
“100% 우리콩, 자신 있다니까” ‘우리콩 손두부’ 이연형 사장
새동네 중앙로에 위치한 우리콩 손두부, 추운 날씨에도 식당 앞에서 두부를 만드느라 이연형 사장의 손길이 바쁘다. 도봉산 입구에서 오랫동안 음식점을 운영했던 이 사장은 지난해 1월 두부전문점을 새로 열었다. “등산객이 줄어들기도 했고 연령층이 높아졌어요. 평일에는 90%가 노인층이야.” 경기가 안 좋아 걱정이라지만 손수 만든 두부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걱정 없이 든든하다. “수입산 한 톨도 안 섞였어요. 100% 국산 공입니다. 맛없을 수가 없지요.” (02)955-5005
“꼼꼼하고 저렴하게 고쳐 입으세요” ‘바늘과 실’ 김유순 사장
2016년 1월 31일에 신장개업한 ‘바늘과 실’은 도봉산 입구에 유일한 의류수선집이다. 특히 고가의 아웃도어 의류가 몸에 맞지 않아 고민이었다면 ‘바늘과 실’을 추천한다. 그래픽디자이너, 리폼하우스 등을 거쳐 새동네에 자리를 잡은 김유순 사장은 20살부터 옷만 만들어온 전문가로 복잡한 의류도 체형에 맡게 수선해낸다. 야무진 일솜씨와 더불어 수선비가 저렴한 것도 ‘바늘과 실’이 내세우는 큰 장점이다. 010-3896-3277
“다들 살림살이 넉넉해지기를” ‘잔디로·산야로’ 이경수 사장
도봉산역에서 건널목을 건너 상점가 초입에 위치한 ‘잔디로·산야로’ 판매대의 이천 원짜리 장갑, 오천 원짜리 스틱, 만 원짜리 모자가 등산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저렴한 등산장비들이 주로 팔려나가지만 매장 내부에는 유명 브랜드의 의류, 배낭, 캠핑장비들도 빼곡하게 갖춰져 있다. 5년 동안 도봉산 입구에서 ‘잔디로·산야로’ 매장을 운영해온 이 사장은 “요즘처럼 경기가 나빴던 적이 없었다”고 걱정하면서도 손님들에게 정겨운 미소를 잃지 않는다. (02)955-0992
“싸다고 함부로 만드는 거 절대 아냐!” 도봉산 입구의 명물, 이천 원 김밥
“도봉산 점심은 김밥이지.” 입맛 까다로운 등산객들도 도봉산 김밥만큼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새동네를 통과하는 골목의 포장마차 가판대에서 파는 이천 원짜리 김밥은 햄, 맛살, 시금치, 당근, 계란, 단무지 등 속 재료도 충실하고, 고소한 참기름 넉넉하게 바르고, 고춧가루 매콤한 겉절이까지 곁들여줘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한다. 포장마차 안에서 먹을 경우에는 뜨끈하고 시원한 어묵국물까지 제공하니 가히 이천 원의 만찬이라 자신할 만 하다.
“어머니의 손맛은 그리움이지요” ‘할머니집’의 김유태씨
1954년부터 도봉산자락에 도봉매점을 하던 정흥업 할머니는 많은 도봉산꾼들에게 애틋한 추억이다. 넉넉하고 자상하던 할머니는 1987년 돌아가셨지만 아들 김유태씨는 ‘할머니집’이라는 상호로 도봉산 입구에서 어머니의 손맛을 이어가고 있다. 국산 콩을 갈아 돼지고기와 함께 사골육수에 보글보글 끓인 생콩탕이 별미로, 예전 할머니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저렴하고 든든한 맛집이다. (02)954-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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