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속에 마음묻고…화흥포에서 보길도까지
해넘이나 해돋이는 올망졸망한 섬 사이로 떨어지는 해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노을진 하늘에 기러기떼가 날아가고, 붉게 타오르는 바다에서 고기를 낚는 어부의 모습은 얼마나 평화로운가. 만약 밀레가 우리 서남해안 같은 바닷가에 살았다면 ‘만종’은 그런 그림이었을 것이다. 근심과 걱정으로 살아온 한 해. 일몰은 지난한 세월을 태워 보내버리는 배경화면으로 딱 좋다.
완도는 연말 낙조여행에 잘 어울리는 곳이다. 서남해안에 201개의 섬들을 거느리고 있는 큰 섬. 보석처럼 아름다운 보길도도 완도에 속한다. 남녘을 향해 열린 화흥포를 먼저 찾아갔다. 화흥포 앞바다에서는 횡간도와 흑일도, 백일도가 아스라하게 보인다. 겨울철에는 섬과 섬 사이로 해가 떨어진다. 갈대가 무성한 호수를 지나면 바로 화흥포. 화흥포는 보길도행 배가 떠나는 곳이다. 평범한 포구처럼 보이지만 노을지는 모습이 환상적이다.
수평선이 해무로 흐릿한 날. 안개 속에서도 태양의 윤곽이 너무나 또렷했다. 붉은 햇덩이가 바다와 마주치는 순간. 수평선 끄트머리에서 출렁거리는 금빛 파도의 모습이 또렷했다. 이런 ‘오메가(Ω) 일몰’은 평생 몇 번 보기도 힘들다고 하는데 운이 좋았다.
보길도는 언제 찾아가도 넉넉하고 따스하다. 천문과 지리에 통달했던 고산 윤선도가 그 많은 섬 중에서 택해 말년을 보낸 섬. 고산이 제주도로 향하다가 풍랑을 만나 보길도에 정착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들어 고산이 처음부터 보길도행을 계획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보길도는 요즘 톳과 김·미역·전복 양식장으로 유명하다. 섬 사이로 여객선이 겨우 빠져나갈 만한 길이 트여있는 바다는 거대한 어장이다. 톳과 김·미역·전복 등으로 주민들이 올리는 수입은 가구당 5천만원 정도. 그만큼 부자섬이다. 한해 관광객만도 50만명이 찾는다. 하여 도회지 관광객들의 주머니를 털기 위해 바가지를 씌우는 식의 얄팍한 상술을 부리지 않는다. 보길도도 옛날 모습은 아니다. 청별항은 많이 변했다. 대부분 새단장한 2~3층 건물.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속해 고도제한을 받기 때문에 볼썽사나운 빌딩은 없다. 그만큼 항구가 깨끗하다.
보길도 일몰 포인트는 선창마을과 망끝 전망대이다. 선창마을 앞에서는 갈도와 미역섬, 상도 사이로 해가 떨어진다. 섬들 사이로 해가 지는데 양식장의 부표와 어우러진 일몰 모습이 아름답다. 그리고 평화롭다.
망끝의 일몰은 보다 장엄하다. 남도해안이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대. 옛날 마을 아낙네들이 고깃배가 무사히 들어오는지 근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고 해서 이름이 망끝이다. 보옥리 마을 입구 언덕빼기에 있다. 차를 세우고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다.
망끝 바로 앞에는 삼각자를 세워놓은 듯한 뾰족산이 있는데 역시 일몰을 보기 좋다. 산행이 조금 버거운 것이 흠. 뾰족산 바로 아래의 보옥리에는 공룡알 해변이 있다. 영락없이 공룡알처럼 생긴 돌들로 이루어져 있다. 완도의 구계등을 연상시킨다.
정도리 해안은 일출 명소. 정도리 언덕빼기에서 내려다 본 보길도 동쪽의 바다는 눈부실 정도로 곱다. 햇살까지도 부표처럼 바다를 떠다닌다. 갯돌 해변은 파도에 갯돌 구르는 소리가 듣기 좋다. 이밖에도 서쪽으로 중리, 통리해수욕장, 송시열 글씐바위 등 명소가 많아 보길도의 하루가 짧다.
뭍에는 고산 유적지가 흩어져 있다. 세연정에는 벌써 동백이 활짝 꽃망울을 터뜨렸다. 10월말부터 피기 시작해 5월초에 가서야 핏빛을 거둔다. 따뜻한 햇살 아래 앉아 있으면 벌써 봄이 느껴지는 듯하다.
화흥포에서 보길도까지 징검다리처럼 놓인 섬들을 밟고 오고 가는 햇덩이. 이맘 때의 일몰은 너무 장엄해서 괜스레 눈시울이 젖는다. 바다 끝에서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기다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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