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경제

김용철 변호가가 배신자라는 시위를 보며...

에루화 2008. 4. 5. 20:04

어제였던가요. 뉴스에 특검 사무실 앞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시위하더군요.

그들의 손에는 '나라경제 망치는 삼성특검 해체하라' , '배신가 김용철' 이런 글귀를 적은 피켓이 들려 있었습니다.

배신자 김용철. 저는 이 단어가 참 쓰리게 다가옵니다.

삼성의 내부 비리를 고발한 사람. 그래서 삼성 특검이라는 경제적, 정치적 광풍을 몰고 온 사람.

과연 이사람이 배신자 입니까?

 

시위하던 분들에게 혹은 김용철이 배신자라는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과연 김용철 변호사가 누구를 배신했다는 겁니까?

삼성이라는 기업입니까?

어림없습니다. 제 사촌 동생 삼성 SDI 연구소에 재작년 취업 했습니다. 그야말로 집안의 자랑거리였죠. 힘들게 공부해 들어간 녀석. 그리고 대견하게 바라보는 친척들.

그 모두가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한 녀석이 기업의 비자금 조성을 위해 차명계좌를 개설해야 하고, 회사의 비리에 침묵을 지켜야 하고, 그저 월급이나 받고 밥줄 유지하기 위해 비굴하게 살아야 하는 그런 장면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리고 한때는 자랑이었던 삼성이라는 직장이 이젠 범죄의 온상처럼 비쳐질 때, 김용철 변호사가 고발을 했기 때문에 수치를 겪는다고 배신자라고 욕할까요? 그런 부모가, 그런 가족이 어디있습니까. 단지 명예를 얻고 부를 얻기 위해서 자랑스레 들어간 회사가 엄청난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에, 그 회사가 모든 순진한 직원을 공범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분노할 것입니다. 또는 그래야 합니다.

 

네. 김용철 변호사도 한때 그 비리에 가담했던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처벌하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범죄를 저지를 무리 중의 한사람이 잘못을 인정하면 우리 사회는 배신자라고 손가락질 합니까? 차라리 끝까지 범죄에 가담하고 사회를 기만하는 것이 옳은 일이란 말입니까? 얼마전 기업에서 신입사원 면접때 '내부고발자"에 대한 질문을 했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참으로 기업은 사람이 모여 만든 것이로되, 철저히 비인간적인 조직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우리 사회는 가부장적인 조직의 힘과 권위에 너무 길들여져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릴때 부터 학교에서 배우던 단체생활의 미덕으로부터 군대에서의 튀지 마라 정신까지..그리고 사회에서 경험하는 조직 생활, 그놈의 조직 조직..

부패한 수천개의 거대 조직보다 의로운 한 개인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삼성이 거대기업이고, 수천, 수만명을 먹여 살린다고 해도, 잘못은 잘못입니다. 개인 김용철에 의해 휘둘리는 것 처럼 보인다고 해서, 마치 가부장적 권위에 대항하는 반항아 정도로 치부하고 손가락질 한다면 우리사회는 정녕 희망이 없는 것 아닌가요.

 

오히려 그 의로움을 칭찬해야 합니다.

그리고 조직이 주는 공포와 권력에 맞서는 그 용기를 칭찬하고 기려야 합니다. 결국 조직이란 것도 한 개인과 개인이 결합해서 만드는 것입니다. 집에서는 다 멀쩡한 사람 행세를 하다가, 직장만 나가면, 어디 단체만 나가면 바보가 되어 비굴하게 살아야 사회생활 잘 한다고 하는 이런 시대착오적인 흐름도 이제는 끝을 맺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삼성의 이건희 회장과 비리를 주도했던 몇 사람의 간부들도..정녕 자신들이 저지른 행동이 국민을 심히 기만하고, 배신한 행위라는 것을 인정하고...삼성 기업 몇개를 주고서라도 살 수 없는 정직과 의로움이라는 가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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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아고라에 처음 쓴 글이 베스트에 올랐군요.

아고라와 같은 인터넷 판 [광장]이 존재한다는 거...참 다행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댓글을 좀 읽다가 주로 반대하신 분들은 김변호사의 조직에 대한 배신행위에 초점을 두시는 군요.

의견은 다양할 수 있으니 존중합니다.

하지만 씁쓸하군요.

비록 그가 같은 공범이었긴 하지만, 그의 고발과 폭로로 인해서 우리 사회와 기업문화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배신자나 양아치라는 표현은 너무 가혹해 보입니다.

여기서 그를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당신들은 우리 모두가 알게 모르게 이 사회의 악과 더불어 사는 방관적 공범이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정말 그리 무균질 덩어리로 깨끗하십니까?

 

집단이 부패했다면, 그 소속 개인은 모두 책임을 공유해야 합니다. 김변호사를 비난만 하는 분들.

당신들이 정말 그리 양심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계기를 만든 김 변호사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격려해야 합니다. 

왠지 김변호사의 이중성을 비난 하는 이면에서 자신의 무기력함과 비겁함을 감추려고 하는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