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경제

아웃도어 빈티지를 찾아서 II오프라인 구제시장에서 건진 오래된 아웃도어 의류

에루화 2016. 4. 3. 22:51

서울 광장시장 2층에 자리한 구제 상가. 여기 주인들은 젊고 패션에 관심이 많아 상가별로개성있는 제품들을 구비해 놨다. 200여 업체가 성업 중이다.

온라인에서만 봤던 빈티지 아웃도어 의류를 구제 옷 시장에 나가 직접 골라봤다. 국내 구제의류 시장의 본거지인 서울 광장시장과 홍대인근, 부산 국제시장의 산더미 같은 옷가지 속에서 ‘득템’이라 할 만한 아웃도어 구제 제품들을 찾아봤다.

서울 광장시장, 부산 국제시장에 대표적
빈티지, 즉 구제 옷에 대한 편견 하나. 원래 주인의 기운이 옷에 스며 구입한 사람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찝찝하다’는 거다. 그 찝찝함의 근간에는 구제 옷이 “죽은 사람에게서 벗겨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의심이 깔려있기도 하다.

본인은 위의 낭설을 믿지 않으며 일반 매장에서 구할 수 없는 특이한 제품을 구하기 위해 구제시장을 자주 이용한다. 물론 이러한 제품들이 시중 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이유도 있다. 이처럼 구제 옷을 입고 말고는 순전히 개인 취향이다. 다만 편견을 버리면 선택 폭을 넓힐 수 있다고 강조하는 바다.

서울 종로 4가 광장시장 전경. 전광판이 보이는 곳 옆의 계단으로 올라가면 구제시장이 나온다.

구제 옷에 대한 편견을 깨려면 시장으로 가서 직접 물건을 확인해 보는 게 좋다. 서울의 대표적인 구제 시장은 종로구 숭인동에 위치한 ‘동묘 벼룩시장’과 종로 4가 광장시장,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이하 강남고터)가 있다.

이 중 동묘 벼룩시장의 제품들은 나머지 두 시장과 달리 ‘하드’한 편이다. 여기 구제 상가들은 옷을 브랜드, 장르 구분 없이 마구 섞어 놓고 파는 게 대부분이며 상태 또한 중하급 정도다. ‘혹시나 하고 갔다가 역시나’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광장시장과 강남고터의 구제 시장은 품질과 디자인 면에서 중상급에 해당되는 곳이다. 특히 광장시장 2층에 자리한 구제 상가의 주인들은 죄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인지라 진열해 놓은 옷의 상태나 디자인이 꽤 볼만하다. 강남고터도 비슷한 분위기이지만 규모가 작아 시장이라 부르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다.

광장시장 내에 비치된 상가 안내도. 현재 200여 업체가 성업 중이다.

최상급 구제 옷을 구하고 싶다면 홍대 인근으로 가는 게 좋다. 여기 구제 상가들은 한곳에 밀집돼 있는 게 아니라서 발품을 팔아야 하지만 몇몇 상가들은 주인장들이 직접 외국으로 나가 품질 좋은 ‘헌 옷’을 직접 구해오기도 해 볼거리가 많다.

그 외 국내에서 헌 옷을 취급하는 시장 중 부산 국제시장은 마니아들 사이에서 국내 최대 규모로 통한다. 부산 내에서 구제 옷을 취급하는 가게는 모두 이곳에 몰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장이 꽤 크다. 제품의 질도 상·중·하에 걸친 전 상품을 볼 수 있다.

광장시장, 브랜드 이름 대야 쉽게 찾아
광장시장 건물 1층에 자리한 먹거리 골목을 지나 종로 3가 방향으로 가자 인파가 줄며 한적해 졌다. 시장 끝에는 포목점과 반찬가게들이 늘어서 있었고 그 사이에 2층으로 올라가는 통로가 나왔다. 통로 입구에는 ‘구제 시장’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어 위층에 뭐가 있는지 짐작케 했다.

2층으로 올라가자 어두운 조명 속에서 옷을 잔뜩 걸어놓고 파는 상가들이 나타났다. 안내도를 보니 여기서 영업 중인 가게는 약 200개. 각 구역은 얇은 칸막이를 세워 구분해 놓았고 칸마다 옷을 빽빽하게 걸어놓은 채 성업 중이었다. 시장 내부는 공간이 협소해 사람들은 어깨를 잔뜩 움츠리거나 몸을 옆으로 돌려 게처럼 통로를 지나다녔다.

광장시장 내부에서 구제시장으로 올라가는 입구. 쉽게 찾을 수 있다.

“형님, 뭐 찾아요? 여기 와 봐요. 잘해 드릴게.” “다른 데서 이 가격에 못 구해!” “누나가
특별히 싸게 해 주는 거야. 자 입어봐.” 좁은 통로를 지나다니다 보니 옷 가게 주인들과 가까이서 마주할 수 있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그들은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어떤 가게 안에서는 흥정이 한창이었는데 손님을 친한 동생 대하듯 ‘반말’을 섞어가며 옷을 골라주기도 했다.

아웃도어 브랜드만 전문으로 파는 가게는 없었다. 관련 옷을 찾으려면 가게 안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브랜드 로고를 찾거나 일일이 안으로 들어가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웃도어 옷을 보려고 왔는데”라고 하면 대부분 알아듣지 못했다. 종업원은 곧바로 “어떤 종류의 옷을 찾느냐”고 물어봤고 여기에 또 “플리스 재질로 된 거나 고어텍스 재킷을 찾는다”고 자세히 설명해야 옷을 내왔다.

광장시장 ‘패션왕’ 김건우 대표. 자신이 입던 파타고니아 제품을 20만원에 팔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가게들은 이마저도 잘 알아듣지 못했고 브랜드 이름을 들먹여야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예를 들어 “파타고니아 있어요?” 하면 바로 옷을 보여주거나 “그런 건 없다”는 명쾌한 대답을 했다. 수차례 시장 내부를 돈 결과 아웃도어 관련 상품을 취급하는 업체 두 곳을 발견했다. 이 중 ‘수입구제 패션왕’의 사장 김건우(30세) 씨는 자신이 얼마 전 입었던 파타고니아의 패딩 재킷을 걸어놓고 판매하고 있었다.

구제 옷 치고는 좀 비싼 가격인 20만원 상당이었고 가격을 이렇게 매긴 이유는 “몇 번 안 입은 제품”이라서 그렇다. 또 한 곳은 다른 가게에서 ‘아웃도어 전문 취급점’이라고 추천받은 업체로 ‘고구마’라는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엘엘빈(LL Bean)의 옷을 들고 있는 고구마 정오성 대표.

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정오성(27세), 윤성현(26세) 두 대표는 파타고니아 제품을 생산연도별로 구분해 놓고 판매하고 있었다. “어디서 이런 제품을 구했느냐”고 하니 “미국에서 직접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파타고니아 플리스 재킷 외에도 오래된 방수 방풍의도 진열해 놓고 있었다. 이들은 “여기서 파타고니아나 아웃도어 옷만 따로 찾는 사람은 없고 구경하다가 눈에 띄면 집어가는 정도다. 아웃도어 옷에 대한 수요는 그리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파타고니아 제품을 들고 있는 고구마 윤성현 대표.
시장에서 발견한 노스페이스 재킷.
노스페이스에서 나온 플리스 재킷. 국내 시장에서 보기 힘든 제품으로 알고 있다.

 

홍대, 개성 넘치는 구제 편집숍 포진
홍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나와 곧바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간 뒤, 길이 막히는 곳까지 가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옷가게들이 늘어선 골목을 볼 수 있다. 홍대에서 괜찮다고 소문난 구제 가게는 여기서 몇 군데 찾을 수 있다. 다만 가게는 전부 지하에 있어 골목을 지날 때 간판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

 

홍대 트락과 가게 내부에서 발견한 옷들. 가격은 10만원 내외다.

트락(TRAK), 마포구 서교동 346-51 지하1층
로파우사다 바로 옆 지하에 있다. 간판에 쓰여 있는 바와 같이 일본, 유럽에서 들여온 빈티지 의류들을 취급한다. 이곳 주인은 아웃도어 브랜드에 관해서도 꽤 정통해 문의를 하면 관련 브랜드는 물론 비슷한 상품군을 추천해 주기도 한다. 여기에는 파타고니아 제품은 물론이고 몽클레어, 아크테릭스 등의 명품으로 통하는 브랜드의 옷과 펜들턴, 칼하트 등의 세미 아웃도어 스타일의 옷들도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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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보이 빈티지. 파타고니아 제품을 구비하고 있다.
카우보이 빈티지 내부. 부츠를 따로 모아 놓은 한편 밀리터리 용품도 한 곳에서 볼 수 있다.

카우보이 빈티지(Cowboy Vintage), 마포구 서교동 345-3 지하1층
트락의 건너편 지하에 있다. 이 가게는 개성이 뚜렷하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제품들이 많다는 뜻이다. 당연히 아웃도어 브랜드도 있다. 대표적으로 파타고니아의 플리스, 방풍 재킷과 엘엘빈 등이 있고 아웃도어 용 부츠나 등산화 등도 갖췄다. 그 외에 밀리터리 스타일의 제품 코너가 따로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종업원이나 주인 모두 실제 아웃도어 관심이 있고 관련 상품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어 문의를 하면 즉각 제품을 보여주거나 제품이 있는 곳으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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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따몬따 입구. 지하에 있어 찾기가 쉽지 않다.
라따몬따 내부. 여기는 옷마다 옷에 생산된 연도 등을 표기한 택이 달려있다. 옷 박물관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잘 꾸며졌다.

라따몬따(Ratta Montta), 마포구 서교동 337-20 지하 1층
제대로 된 아웃도어 빈티지 옷을 찾는다면 이 집에 가야한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종업원이 나와 가게 콘셉트를 정성스럽게 설명하는 게 특징이다. 빈티지 문화의 저변확대를 위해 판매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태도도 인상적이다. 이 가게는 옷가게라기보다는 박물관이라고 하는 게 맞을 정도로 역사와 스토리를 가진 옷들로 채워져 있다. 여기는 옛날 미국 사냥꾼들 혹은 노동자들이 입었던 옷을 아웃도어라는 카테고리에 포함시켜 놓고 전시 및 판매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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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국제시장에 있는 구제 숍의 대략적인 위치도. 1 국제시장 슈트케이스. 파타고니아 제품이 많다. 2 뿌잉뿌잉에는 옛날 등산복 등이 몇벌 있다. 3 뼈티지에는 아웃도어 외 가죽재킷 등이 볼 만하다. 4 감수성 내부. 주인이 까탈스럽다.

부산 국제시장, 상가 많지만 아웃도어 제품 보기 힘들어 
부산역에 도착했다. 구제 옷의 본거지라 알려진 부산 국제시장에서 괜찮은 빈티지 아웃도어 옷 한 벌 건질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잔뜩 들떴다. 역에서 나오자마자 전철을 타고 남포역으로 향했고 남포동의 휘황찬란한 번화가를 가로질러 구제 골목에 진입했다.

부산 국제시장의 구제 골목은 한국전쟁 후 미국의 원조물품이 부산으로 밀려들어오며 조성됐다. 약 45년 전 지금의 케네디센터 자리 노점에서 삼십여 명이 미군의 원조물품이었던 옷과 머플러 속옷 등을 팔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게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시장에는 미국이나 일본 등지에서 대량으로 압축 포장해 들여온 구제 옷들이 밀려들었다.

뿌잉뿌잉에서 입어 본 70~80년대 스타일 아노락. 가격은 3~5만원 대다.

옷들은 보통 큰 궤짝 안에 들어있었고 이를 통째로 거래했다. 이때 돈이 있는 상인은 한꺼번에 이 궤짝을 사들인 다음 국제시장 내의 다른 상인들에게 다시 되팔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옷을 아는 몇몇 상인들은 수북한 옷 더미 속에서 인지도 있는 브랜드나 디자인이 예쁜 제품을 골라 가져가는 식으로 시장 내다양한 상가들이 생겨났고 국제시장은 이렇게 국내 최대 규모의 헌 옷 시장으로 성장했다.

위 사실로 미루어 부산지역 사람들은 다른 지역보다 옷을 잘 차려입지 않았을까 싶다. 구제 골목에서 수입 브랜드 제품들을 나름 일찍 접할 수 있었을 테고 가격도 저렴했으니까. 이러한 특이성이 아웃도어 쪽에도 옮아 구제 골목에는 분명 희귀한 아웃도어 브랜드도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감수성에서 발견한 REI 파일 재킷. 3만원 수준이다.

그러나 오자마자 그런 걸 파악하기엔 국제시장 내 구제 골목은 꽤 컸다. 상가들이 너무 많아 어디부터 들어가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한 바퀴 대충 돌아보니 아웃도어 브랜드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가게는 딱히 없었다. 이후부터 밖에서 가게 내부 분위기를 살핀 다음 감이 오면 들어가서 둘러보는 식으로 시장을 뒤졌다.

‘감이 온다’하는 기준은 가게의 내부 인테리어와 간판이 어떻게 생겼느냐에 따라 구분했는데 우선 가게 앞에 옷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파는 집은 제외했다. 간판에 이름을 대충 써서 작게 매달아놨거나 없는 집 또한 가급적 피했다. 왜냐하면 이런 집들은 아웃도어 브랜드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구제 상가를 돌아 본 바 쓸 만한 아웃도어 브랜드를 비치해 놓으려면 가게는 편집숍(주인의 취향대로 옷을 골라서 비치해 놓은 상가)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마구잡이로 옷을 나열해 놓은 집은 우리가 찾는 상품이 없을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다.

슈트케이스에서 발견한 파타고니아 플리스 재킷. 5만원 대다.

이런 기준을 적용하니 기대와 달리 희귀한 아이템을 찾기란 어려웠다. 눈에 띄는 편집숍 형태의 상가에도 혹할 만한 제품은 눈에 띄지 않았다. ‘뿌잉뿌잉’이라는 가게의 1970년 산 아노락 방풍재킷과 ‘감수성’의 REI 파일재킷, ‘뼈티지’의 팀버라인 바람막이 등이 이날 거둔 수확이었다.

이 외에도 광장시장과 마찬가지로 파타고니아 제품을 취급하는 상가가 있었고 바버재킷이나 칼하트, 엘엘빈, 에디바우어 등의 브랜드도 자주 눈에 띄었다. 국제시장에서 괜찮은 아웃도어 브랜드를 ‘득템’하려면 이틀은 충분히 돌아봐야 한다. 밖에 보이는 가게 외에도 지하에 숨어있는 상가들도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옷을 뒤지는 것도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국제시장 내부. 이 일대는 도로 양옆은 물론이고 건물 지하와 위층도 모두 구제 옷 상가로 이뤄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