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경제

나는 왜 자식을 지키지 못했나????

에루화 2008. 3. 25. 14:44

"나는 왜 자식을 지키지 못했나" 고통받는 피해부모

노컷뉴스 | 기사입력 2008.03.25 06:02 | 최종수정 2008.03.25 06:02


어린이를 유괴해 살해하는 반인륜적인 사건이 끊이질 않으면서 가족들이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CBS는 어린이 유괴살해 사건으로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족들의 삶과 후유증이 얼마만큼 큰 지를 알리고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한다는 의도에서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끝나지 않은 고통, 아동 유괴 살해', 오늘(25일)은 그 두 번째 순서로 '피해 부모들에게 나타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취재했다. < 편집자 주 >

혜진이와 예슬이의 모교인 명학초등학교 학생들은 오늘부터 심리치료를 받는다. 끔찍한 사건 이후 학생들이 공포감과 불안감을 호소하자, 이러한 정신적 후유증이 오래 지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어린이 유괴살해 사건으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의 정신적 후유증은 어느 정도일까. '시간이 약'이라고 하기엔, 자녀 잃은 부모들이 겪어야 하는 정신적 고통은 너무나 크다.

▶"나는 왜 자식들을 지키지 못했나"…자기비하, 수면장애 호소하는 부모들

자녀를 잃은 피해부모들에게 정신적 후유증으로 나타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다양한 모습이다.

주변 가족들이 얼마나 위로하고 지지하는지, 평소 자아가 얼마나 강했는지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피해 부모들은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린다.

아이가 유괴돼 피살된 경험이 있는 임모 씨의 경우,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면제 없이는 잠에 들지 못하는 등 수면장애를 겪고 있다. 또 다른 피해 부모들 역시 자녀가 유괴될 당시 자신이 곁에 없었던 것을 자책하며 자기비난에 빠지기도 하고 기억력 감퇴, 신체적인 무력감을 호소한다.

▶ 자식의 죽음, 배우자 상실보다 큰 충격

우리나라에서 자식의 죽음은 배우자 상실에서 오는 스트레스보다 강도가 훨씬 크기 때문에, 피해 부모들은 대부분 극심한 정신적 후유증을 앓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한양대 남정현 교수(신경정신과)는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배우자 상실이 가장 큰 스트레스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자식에 대한 부모의 지극한 헌신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배우자 상실로 인한 스트레스가 80이라면 자식의 죽음에 따른 스트레스는 100에 가깝다"고 말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충격적인 사건 직후 멍함, 악몽, 우울 등의 급성 스트레스 증상들이 6개월을 넘어서까지 지속될 때 진단된다. 그러나 피해부모들에게 '자식이 숨져 더 이상 곁에 없다'는 사건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 이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다른 경험이나 생각 등으로 증상을 '희석'시키기 힘들다.

사건이 발생했던 지역에서 멀리 떠나는 등 적극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후유증에 계속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비슷한 사건 일어나면 또 다시 떠올라…결국 뇌손상까지도

피해 부모들은 또 끔찍한 사건이 되풀이될 때마다 조금이나마 극복됐던 정신적 충격에 다시 빠지고, 심각한 경우 뇌손상까지 입는다.

2004년 부천, 2006년 용산, 지난해 제주에 이어 이번 안양에서 일어난 사건까지, 해마다 발생하는 어린이 유괴 살해 사건은 이미 피해를 겪은 부모들에게 악몽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반복적으로 스트레스를 가하면서 뇌신경까지 위축시킨다는 것.

남 교수는 "자녀의 죽음을 한번 경험한 부모들은 다른 사람에게 유사한 일이 일어났을 때, 간접적으로 재충격을 받게 된다"며 "반복적인 정신적 충격은 뇌신경 계통에 영향을 미쳐 감정 조절 부위를 손상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 반사회적 성격으로 변해버리기도

경찰의 미흡한 대처로 인해 자녀가 목숨을 잃었다거나, 붙잡힌 범인에 대해 사법부가 가벼운 처벌을 내렸다고 느낀다면 피해 부모들은 사회 전체를 불신할 수도 있다. 이들은 정부나 제도 자체에 불만을 쌓아가고, 급기야 반사회적 성격으로 변하기도 한다.

중앙대 김성천 교수(아동복지학과)는 "피해 부모들을 상담해 보면, 상당수는 국가나 제도에 대해 굉장히 냉소적 태도를 갖고 있다"며 "이런 태도는 사건이 일어날 때만 반짝 관심을 기울이는 우리 사회를 비롯해 사회 전반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심리치료 전문가들은 "피해 부모들이 정신적 후유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증상 초기부터 약물치료와 정신치료를 받는 등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해야 하고 가족이나 친구, 나아가 사회는 이들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치료효과를 배가 시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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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사회부 윤지나 기자 jina13@cbs.co.kr/ 박종관 기자/ 안종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