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약되겠지/言과行의 좋은글

마음에 남는 좋은 한시 몇개

에루화 2010. 4. 12. 21:38

꿈에 본 내 고향 (10)

10.   송별곡 (1)

 

1)   정지상의 이별노래 

 

送人 (1)

 

雨歇長堤草色多 (우갈장제초색다) 비 개인 강둑에 풀빛이 진한데

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동비가) 남포에 님 보내니 슬픈 노래 북받치네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수하시진) 대동강 물은 어느 세월에나 마를까, 

別淚年年添綠波 (별루년년첨록파) 해마다 이별 눈물을 푸른 물결에 더하는데.

 

送人 (2)

 

庭前一葉落 (정전일엽락)  뜰 앞에 나뭇잎 하나 떨어지고

床下百蟲悲 (상하백충비)  마루 밑에 온갖 벌레 슬퍼구나

忽忽不可止 (홀홀불가지)  홀홀히 떠남을 말릴 수 없네만

悠悠何所之 (유유하소지)  유유히 어디로 가는가

片心山盡處 (편심산진처)  한조각 마음은 산이 다한 곳에 있고

孤夢月明時 (고몽월명시)  외로운 꿈은 밝은 달과 함께 한다

南浦春波綠 (남포춘파록)  남포에 봄 물결 푸르른데

君休負後期 (군휴부후기)  그대는 훗날의 기약 제발 잊지마오 

 

정지상의 이 시 송인(1)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중국 사신이 오면 평양 부벽루에

걸어두고 자랑하였을 만치 빼어난 시로 정지상의 절창으로 이름 높다.

어쨌든 위 두 시에는 춘초벽색(春草碧色) 춘수록파(春水綠波) 라는 표현이 있는데 따라서

봄의 푸른 풀과 푸른 물결을 시인이 무척 좋아했음을 짐작케 한다. 

 

2)  채미정(採薇亭)에 입혀진 節義절의 길재

 

500년 사직이 점점 기울어가는 고려 말 공양왕 1 1390년 늙은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핑계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 선산으로 돌아온 뒤 공양왕이 수 차례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고 구미 금오산 기슭, 고향 땅에 묻혀 혼란한
정세에서 벗어난 채 아래 시와 같이 그의 청빈한 생활을 노래한 것처럼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였다.

 

 

述志            술지             내 평생의 뜻

 

臨溪茅屋獨閑居  임계모옥독한거   개울가에 초가집 지어, 한가히 홀로 사니
月白風淸興有餘  월백풍청흥유여   달은 밝고 바람은 맑아, 즐거움이 넘친다.
外客不來山鳥語  외객불내산조어   손님이 찾지 않아도, 산새들이 속삭여주고
移床竹塢臥看書  이상죽오와간서   대나무 언덕으로 평상을 옮겨, 누워서 글을 읽는다



그 암울한 고려 말, 기울어가는 정세를 붙들었던 정몽주와 같이 고려왕실의 기둥이 되고자 하지는 않았지만 조선이
개국한 뒤 정종과 태종이 그를 불렀으나
정종 2(1400) 방원이 그를 불러 태상박사(太常博士)에 임명했으나
임금을 모실 수 없다며
소를 올리고 끝까지 조선의 벼슬살이를 거부했다.

 

‘(전략) 나가고 물러남을 생각하매 실로 명분과 예의의 경중에 관계된 일이오라 신이 비록 두터운 낯짝으로 영광을
받잡고자 한대도 남들이 반드시 눈을 부릅뜨고 손가락질하며 비웃을 것이옵니다. (하략)’

 

3)   송백광훈환향(送白光勳還鄕)

 

조선 중종 때 시인 임억령(林憶齡)은 친우 백광훈(白光勳)이 귀향할 때 고향에 갈 수 없는 자기 신세를 〈송백광훈
환향
送白光勳還鄕〉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送白光勳還鄕       송백광훈환향   백광훈의 귀향에 부쳐  林億齡(임억령)

 / 강 월 원 부 결 /
강에 뜬 저 달은 둥글다가 다시 이즈러지고
 / 정 매 락 우 개 /뜰의 매화는 피고 지고 지고 또 피느니
 / 봉 춘 귀 미 득 / 다시금 봄이 와도 돌아갈 수 없고
 / 독 상 망 향 대 /홀로 망향대에 올라 고향을 바라보노라

 

4)  성종대왕과 유호인

 

신하를 사랑하는 성종의 또 다른 면모를 보이는 기록이 <오산설림초고(五山說林草藁)>에 전한다.
 

유호인은 집이 남중에 있었는데 매양 성종에게 귀향하여 노모를 모시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으나, 성종이 이를 허락
하지 않았다. 하루는 유호인 이 굳이 벼슬자리를 사양하고 귀향하게 되었는데, 성종은 친히 술잔을 권하며 전송하면
서 이 노래를 지었다.

     

이시렴 브듸 갈따 아니 가든 못할쏘냐
무단
(無端)이 슬튼야 남의 말을 드럿는야
그려도 하 애도래라 가는 뜻을 닐러라

 

유호인은 자를 극기(克己), 호는 임계(林溪)로 고령이 본관이며 김종직의 문인이다. 성종 5년에 식년시 문과에 급제
하여 1480년 거창현감, 1494년 협천군수로 재직 중 병사하기까지 특히 성종의 총애를 받았던 사람인데, 경관직에서
외관직으로 나아가기를 여러 차례 말했으나, 성종이 그의 인물을 아껴 허락하지 않다가 끝내 떠나려 할 때 부른 시조
이다.
사랑하고 아끼는 신하를 가까이 두고 싶어하는 성종의 애틋함과 안타까움이 구구절절이 사무치고 있다.

 

5)  매창(梅窓)의 사랑

 

이화우(梨花雨) 릴 제 울며 잡고 이별(離別),
추풍낙엽(
秋風落葉)에 저도 날 .
천리(
千里)에 외로운 만 오락가락 노매라
계 랑          
청구영언

 


배꽃이 흩날리던 때에 손잡고 울며 헤어진 님, 가을 바람에 낙엽지는 것을 보며 나를 생각하여 주실까? 천 리 길
머나먼 곳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는구나
.

지은이 : 계랑(桂娘: 1513-1550).

조선 명종 시절 여류시인. 부안의 기생. 성은 이() 본명은 향금(香今),
호는 매창(梅窓), 계생(桂生). 『매창집(梅窓集)
』에 시조 및 한시 70여 수가 전하고 있다.
황진이와 비견될 만한 시인으로서 여성다운 정서를 노래한 우수한 시편이 많다
.

노래와 거문고와 한시에 능했던 전북 부안의 명기 계낭이 한 번 떠난 후 소식 없는 정든 임 유희경을 그리워하여
읊은 노래이다. 배꽃이 비처럼 흩날릴 때의 이별의 정황, 낙엽지는 가을날에 임을 그리워하는 마음, 멀리 떨어져
있는 임과의 재회에 대한 염원 등을 여성의 섬세한 감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화후와 추풍 낙엽을 대비시켜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고 임을 기다리는 안타까운 심정을 고조시키고 있다.

 

6)  강강월(康江月)과 송대춘(松臺春)

 

천리에 맛나따가 천리에 이별하니

천리 꿈속에 천리님 보거고나

꿈깨야 다시금 생각하니 눈물계워 하노라

<강강월(康江月 )>

 

강강월의 대표적 시로 알려진 이 시는 애정시조로, 님과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기약없이 기다리는 여인의 심정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초장과 중장에서 '천리'라는 단어를 4번이나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님과의 만남과 이별이
매우 힘들게 이루어졌음을 강조하였다.

 

이 때 '천리'라는 거리는 물리적인 거리라기 보다, 님과의 만남이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고 느낀 심리적인 거리인데
그러한 님조차도 꿈 속에서나 만날 수 있을 뿐이다. 때문에 꿈에서 깨어난 현실에서는 님과의 만남은 이루어지기
힘들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지은이는 눈물로 위안을 삼고, 체념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 작품은 천리라는 단어의
반복 사용으로 불가능한 애정의 면모를 절실하게 그리고 있다.

 

님이 가신 후에 소식(消息)이 돈절(頓絶)하니

()밧긔 앵도(櫻桃)가 몃번이나 픠엿는고

밤마다 등하(燈下)에 홀노 안저 눈물계워 하노라

송대춘

 

()이 가실적에에는 속()히 단여오시마고 하드니

가고 한번도 무소식(無消息)이라

무삼 약수(弱水)가 막혓관듸 소식좃차 돈절(頓絶)이로구나

춘수만사택(春水滿四澤)하니 물이 만하서 못오시던가

하운다기봉(夏雲多奇峰)하니 봉이 놉하서 못오시는가

봉이 놉하서 못오시거든 쉬여서 넘어를 오고

물이 깁허서 못오시거든 뽕션 타고서 네 오렴은아

참으로 네 모양 간졀하야 나 못살겟네

작자 미상

 

이 시는 송대춘이 여성의 기다림을 소재로 하여 자신의 정한을 담은 것이다.

가고 소식 없는 정인을 해와 달이 바뀌어도 한결같이 그리워하는 송대춘

 


7)  9
년 시묘살이 홍랑(洪娘)의 이별가

 

너무나 아쉽게 헤어진 연인을 사무치게 그리워 하던 홍랑.... 그녀는 참말로 지순한 사랑에 모든 걸 거는 그런
여인이었나 보다.  보고픈 마음에 하루가 여삼추 같았던 그녀는 마침내 남장(
男裝)
을 하고 천리 길을 걸어
경성으로 찾아 간다
.

마음이 지척이면 천리라도 지척이오

마음이 천리오면 지척도 천리로다

우리는 각재천리오나 지척인가 하노라

<작자미상>

찬바람 휭휭 부는 변방의 군막을 물어 물어 최경창이 있는 곳에 드디어 무사히 도달하고서로 그리워했던 두
사람은 한동안 행복한 동거시절을 막중
(幕中)
에서 보내며 죽음보다   강하고 시보다 감미롭고 꽃보다 향기롭고
나비보다 아름다운 절대사랑을 나눈다
.

북쪽 변방의 삭풍이 몰아치는 추운 겨울을 꿈같이 보낸 그 이듬해 최경창은 다시 서울로 부임명령을 받게 되었다
.

이 때 그녀가 쌍성(지금의 영흥)까지 따라가 서러운 이별을 하고 돌아오다가 날이 저문
함관령(咸關嶺)에서 눈물
처럼 내리는 봄비를 바라보며 애틋한 사모의 정이 담긴 시 한 수를
나지막히 노래하여 최경창에게 보냈다.  
이 시가 바로 홍랑이 남긴 유일한 시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묏버들 갈 것거 보내노라 님의손,                 折楊柳寄與千里人
자시() 밧긔 심거 두고 보쇼셔.                 爲我試問庭前種
밤비예 새닙 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쇼셔.          一夜新生葉 憔悴愁眉是妾身

 

산에 있는 버들가지를 골라 꺾어 임에게 보내오니, 주무시는 방의 창문가에 심어 두고 보십 시오. 행여 밤비에
새 잎이라도 나거든 마치 나를 본 것처럼 여기소서
.

이 시는 최경창의 문집에 한시로 올려져 있다.


임에게 바치는 지순한 사랑을 묏버들로 구상화시켜,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임에게 바치는 순정은 묏버들
처럼 항상 임의 곁에 있겠다고 다짐한 연정가이다. 움터 나오는 새 잎이 청순 가련하고 섬세한 여인의 이미지를
물씬 풍긴다
.

어느 평론가는 이 시를 분석하면서
"
님의 손에 보내노라"가 아닌 "보내노라 님의 손에"의 도치법과 "나로 여기소서"가 아닌 "나인가도 여기소서"라는
수동성을 꼽으며 이별을 앞두고도 님을 배려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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